다른 책을 빌리러 갔다가 '글자전쟁'의 책이 있어 예약을 한 책이다. 예약을 한 후 약 한 달이 다 되어서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책 1권의 단편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고 그냥 포기하고 다른 책을 읽고 있는 중에 연락이 왔다. 4월 5일,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후 짬을 내서 도서관에서 받아왔다.
바로 읽지는 못했다. 미리 빌려 온 책은 다 봐야했고, 이런 저런 일로 책을 볼 시간을 잡지 못하고 약 1주일이 지나가 버렸다. 이번 주 화요일 저녁부터 읽기 시작해서 어제 다 읽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도서관에 반납했다. 책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ㅎ...
"소인의 죽음은 그 육체가 다하였기에 사(死)라 하고 군자의 죽음은 그 도를 행함이 끝났기에 종(終)이라 한다. 하지만 죽음은 신성한 것이므로 모든 죽음을 우대하여 두 글자를 합한 상(喪)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석정은 의식을 행하는 중간 중간 장례의 법도에 대하여도 설명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집 밖에 등불을 내걸고 안팎으로 알려 소란을 막고 엄숙함을 유지할 것이며 그 위에 수건을 덮어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람이 다니는 곳에 망자의 이름과 '吊'를 써붙여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작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생각해 보아라. 변이 난 두 마을은 다 풍장의 습속을 가지고 있다. 흉수들이 활 궁이 들어간 글자를 빼앗아간 곳도 풍장을 주관하는 무터였다. 흉수들이 기다린 소년 또한 풍장에서 돌아왔으니,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킨 이유 또한 이 풍장과 연관해 생각해 볼 만하다."
"그럼 이 사건이 이 나라의 안위를 위협하는 위험과는 거리가 있는 것 입니까? 일개 풍습을 두고 벌어지는 일이라면?"
"위험하고 않고보다 더 중요한 건 알고 모르고다. 관장은 자기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언지를 알아야만 한다. 모르고 안전한 것보다는 알고 위험한 게 차라리 나은 법이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태수께서는 처음 국상어른의 원모심려를 그르친 것으로 생각하고 크게 상심하였지만, 오랜 생각끝에 그 풍장은 누가 치러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판단하고 비로소 저를 보냈습니다."
"내가 했어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로구나."
"황송하옵니다. 저희의 우둔함을 꾸짖어 주십시요."
"세상에 어찌 길이 하나만 있고 나머지는 다 틀리겠느냐. 다만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이 있으니 무엇이 꼭 낫다고 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이번에 안망은 실수를 하였다만 그 실수가 오히려 성공보다 못하지 않다."
"이 땅의 자식이 여기 누웠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살점을 취하여라. 가장 멀리 달리는 승냥이가 뼈를 취하여라. 하늘 끝으로, 땅 끝으로 그를 인도하여라. 다만 열흘길은 제 발로 걷도록, 제 태어난 땅을 그리도록 두어라."
이미 여러 번 왼 양 높낮이마저 같은 짧은 읍, 이가 끝나고 죽은 자의 아들이 나서 낡은 천을 장대에 동여맨 후 이를 올곧게 붙잡으니 천에 그려진 또렷한 글자 하나가 죽은 이의 곁에서 평원의 거센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弔
활 궁(弓)자 가운데에 선을 하나 그어 곤(I)자를 더한 글자. 평생 글자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이들이 죽은 이를 기리고자 글자를 둘러쌌다.
멀찍이 사람이 무리를 경계하여 다가오지 않던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어둠을 타고 다가오니 이제 활 든 젊은이는 앞으로 열흘 밤낮 금수의 무리와 싸우며 제 아비의 시신을 지킬 각오를 되새겼다. 사자(死者)의 시체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며 혼이 하늘로 향할 열흘길을 그 아들로 하여금 활을 들고 지키게 하는 풍습, 弔란 바로 그런 모습을 그린 글자였고, 그것은 이제 사라져가는 풍장(風葬)으로 고구려 가운데서도 북방 끄트머리에 살아가는 서맥족만의 장례였다.
"보시오, 서백창. 충, 효, 예란 필히 사람의 높낮이를 두게 마련이라 모든 백성들이, 하물며 자신까지 평등하다 보신 선태왕의 정신과는 오히려 반대요. 유학이 천하의 안정에 도움이 되기는 하나 백성과 백성을 신분차이로 갈라놓게 마련이니, 가난하고 미약한 백성은 대를 거듭해 낮은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선태왕의 생각이셨소. 무릇 왕 된 이라면 유학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장 마땅한 말이 떠 오르지 않은 서백창은 을파소의 말을 듣기만 해야 했다.
"맹자가 배 불러야 예를 안다고 한 것은 바로 유학의 그 모순을 지적한 거요. 예를 모른다고 백성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가난하고 미약한 백성을 학대하는 것과 다름없소. 진정한 예란 그 형식을 엄정하게 지키는 데 있지 않고 따스한 사랑을 서로 주고 받는 데 있소."
"....."
"동명태왕께서는 자신을 버려 평등을 실천하신 분이니 감히 유학의 좁은 세계에 가두어둘 분이 아니오."
"명심하겠습니다."
서백창은 입을 굳게 다물고 물러나왔다.
"미위팅 주임 얘기대로 전준우의 피살이 그 공자숭모회와 연관이 있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범인을 잡아낸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어요."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요? 범인을 잡고 범죄를 척결하는 게 왜 의미가 없다는 거요?"
"나라와 나라 간, 민족과 민족 간의 다툼은 범죄가 아니라 전쟁이니까"
"전쟁이라니?"
"이것은 전쟁이에요. 과거 문명이 생기고 글자가 만들어지던 때로부터 시작된 전쟁. 피해 회복은 범인을 잡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오류를 바로잡는 데 있어요. 한둘의 범인이 아닌 수천만, 수억의 의식을 바꾸는 데 있단 말이에요. 그게 나의 전쟁이에요."
한국의 학교 생활을 하면서 수재라는 말을 들었고 실제로도 수재다운 모습을 보여 준 이태민. 자신의 미래 모습을 일찍 정해 놓았다. 바로 500억원을 벌어 미국의 휴양지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즉,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돈을 벌기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물리학을 전공한 후 정치학을 졸업한 그는 바로 무기회사에 입사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살리면서 인정을 받는다. 그런 그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유명한 무기회사의 회장과 동업을 하여 50억원이라는 돈을 벌게 되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갑자기 터진 군수물품의 비리로 회장은 잡혀 들어가고 자신조차 검찰에 불려가자 중국으로 도망을 가 버린다. 중국에서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엿 보던 그는 전준우라는 소설가로부터 완성되지 못한 소설을 받아 읽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게 된다.
글자전쟁!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소설의 처음 부분은 맞지가 않아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책속에 다른 소설을 넣어 이태민의 현실을 흔들어 버리는 이야기의 구성이 새롭고도 재미가 있다. 책속의 또 다른 소설이 바로 글자전쟁의 제목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태민은 이러한 글자전쟁의 소설을 읽고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의 결말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갔다고 생각한다.
전준우의 소설이 어떤 결말을 가지고 있는지 작가 본인만이 알겠지만 이태민은 기록한 사람의 입장(중국)에서 쓰여진 잘못된 역사는 사실대로 다시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을 중국(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며 결국은 중국의 많은 학자들 앞에서 진실을 말한다.
소설속에서 나오는 팩트 _fact 서치 _search!
이 말을 나는 작가 김진명의 이름에도 어울리는 말이라고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을 했다. 글자 그대로 사실을 찾는다?, 사실을 찾는 사람?
김진명 소설의 특징은 한국인이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쉽게 읽어 나갈 수 있으면서도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스스로 자긍심을 갖게 만든다. 이런 소설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찾고, 분석하고,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고구려'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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