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가장 큰 불상인 해수관음상 [ 레이디 붓다(Lady Buddha) ]이 있는
베트남 디낭 손짜반도 '영응사 [ Chùa Linh Ứng, Linh Ung Temple, 靈應寺 ]'
2004년 부터 2010년까지 6년에 걸쳐 만들어진 영응사는 하늘, 산, 바다가 만나는 지점으로써 하늘, 땅, 인간의 마음이 합쳐지는 곳으로 여기고 있는 곳이다.
다낭 해안가 북쪽에 선짜반도 언덕 위에 위치한 사원이다.
은밀히 소원을 빌고 글로 적어서 몸에 간직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여 '비밀의 사원'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양에서 가장 큰 불상인 67m(건물 30층 높이)의 '해수관음상'이 있다.
베트남전쟁 이후 공산화가 된 조국을 떠나야했던 많은 보트피플이 성공을 하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빠져 희생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탈출에 성공을 하였던 사람들이 자신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바닷물에 빠져죽은 사람들의 혼을 위로하고자 설립한 절이 바로 영응사(靈應寺)라고 한다
포대(布袋)는 '자루'를 뜻하며 화상(和尙)은 '수행을 많이 한 스님'을 뜻한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은 1100년여 전 중국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契此)스님이다.
호를 장정자라 했고 악림사에서 출가했다.
우리가 불상으로 자주 보는 배가 튀어나오고 포대를 걸머진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과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 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렸다.
기이한 행적을 수없이 남겼으며 사람들의 길흉화복이나 날씨 등을 예언하여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 라는 게송을 남기고 반석 위에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대화상이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임을 알아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에는 포대화상이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있는데 아마도 포대를 메고 다녔던 그의 행적 때문인 듯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현대에 들어 포대화상에 대한 신앙과 함께 기복적인 이유에 의해 포대화상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데 중국적인 영향이다.
조선시대 작품으로 몇 점의 포대화상도가 전하는데 본래 선종화의 하나로 그려졌던 것이며 현대에 만들어지는 중국적인 포대화상과는 차이가 있다.
"나에게 한자루의 포대가 있는데 닫으면 바늘 하나 들일 곳 없지만 열어놓으면 온 세계가 함께 하네"
포대화상의 전언에는 시대를 초월해 어느 곳에서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닫으면 바늘 하나 들일 곳 없지만 열어놓으면 온 세계를 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마음이다.
함께 나누는 마음, 베푸는 마음이다.
포대화상 참배방법도 친근하고 재미있다.
포대화상의 배꼽을 만지면서 아랫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리며 만진다.
그렇게 손길이 많이 닿아서인지 배꼽부분이 거무스레하다.
또다른 참배법으로는 포대화상의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책갈피나 책상앞에 놓고 웃는 연습을 하는 것도 있다.
포대화상이 크게 웃을 때 그 웃음을 따라 함께 웃으면 세가지 복이 생긴다 한다.
무병, 장수, 부귀이다.
그래서 포대화상은 우리말로 옮기면 '복(福)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영어로는 '해피 부다(Happy Buddha)'이다.
한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다.
"스님께선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 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불법에 통달하셨다면 저희들에게 법문을 하나 해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대화상은 자신의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다! 이것이 불법의 진수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포대화상은 이렇게 들려주었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전부이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도 자신의 짐을 벗어버려라."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포대를 다시 걸머지고는 발길을 내디디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다음 일이다.
나는 짐을 짊어졌지만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짐이 더이상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지."
포대화상(布袋和尙)의 마지막 게송
夜夜胞佛眠(야야포불면) 밤마다 부처를 보듬고 자다가
朝朝還共起(조조환홍기) 아침마다 같이 일어난다.
起坐鎭相隨(기좌진상수) 일어나건 앉건 서로 붙어다니며
語默同居止(어묵동거지) 말을 하건 않건 같이 머물고 눕는다.
纖豪不相離(섬몽불상리)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如身影相似(여신영상사) 몸의 그림자 같구나
欲識佛居處(욕지불거처) 부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할진대
只這語聲是(지어어성시) 다만 말하는 이놈이니라.
一鉢千家飯(일발천가반) 하나의 바릿대 천 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고신만리유) 고고히 몸은 만리를 노닌다
靑目覩人小(청목관인소) 알아보는 이 별로 없어
問路白雲頭(간로백운두)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분신백천억)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時時示市人(시시시시인) 때때로 세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市人自不識(시인자부지)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我有一布袋(아유일포대)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가碍(허공무가애) 허공도 걸림이 없어라
展開遍宇宙(전개변우주)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 하고
入時觀自在(입시관자재) 오므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참조 : 인터넷
영응사로 가는 길에 차창을 통해 본 풍경.
인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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